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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의 천사’, 여성 사업가로 비상하다

중앙일보 0 668

한국홈케어 유성 원장, 달라스 한인 ‘가정방문 간호 서비스’ 개척
‘와우 패킹’으로 비즈니스 여정 2막 도전 … “가족은 나의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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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달라스에서 한인 최초로 가정방문 간호 서비스 업체를 설립한 유성 원장이 이제는 ‘와우 패킹’으로 달라스를 대표하는 성공한 여성 사업가의 길을 달리고 있다. 


달라스 한인 노인들이 모임을 가질 때면 빠지지 않고 자리를 함께 하는 인물이 있다. 가정방문 간호 서비스 업체인 ‘한국홈케어’의 유성 원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홈케어 서비스 업체를 운영하면서 알게 된 한인 노인들이, 어느 새 유성 원장에게는 친부모와 같은 존재가 됐다. 물질적 후원은 물론, 동포사회 어르신들의 건강을 챙기는 데 가장 먼저 앞장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간호사 출신으로, 한인 노인들 사이에서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유성 원장은 몇 해전 패키징 비즈니스에 뛰어들며 ‘성공한 여성 사업가’로 변신했다. 또 지난 해에는 강경화 전 외교부장관으로부터 표창을 받을 정도로 공공 봉사 및 모국의 위상 제고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녀의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의 원천은 무엇일까? 유성 원장과 인터뷰를 통해 그 답을 찾아보기로 한다. <편집자주>


성 원장은 지난 2000년 친지를 방문하기 위해 자녀들과 함께 달라스를 찾았다가 자녀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이민을 결정했다. 달라스로 이주하기 전에는 한국에서 남편과 함께 개인병원을 개원해 운영했고, 의료기기 도·소매업에도 종사했다.


유성 원장은 달라스에 이주한 후 가정방문 간호 서비스 업체에서 관리자로 근무하게 됐다. 일을 하면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민자들이다 보니 의사소통 문제도 있고, 전통적인 관습의 차이를 극복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한인 노인들의 경우 미국에서 오래 살기는 했지만 미국의 사회보장제도 혜택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이러한 이유로 유성 원장은 한인들을 위한 가정방문 서비스가 절실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고, 그 일이 동포사회에 봉사도 하면서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결국 2007년에 주식회사 형식으로 현재의 ‘한국홈케어’를 설립했고, 서비스 영역도 점차 확대해갔다.


홈케어 서비스는 주로 연방정부나 주정부와 직접 계약을 맺어 하는 사업이다보니 이민자로서 이해가 되지 않는 규제가 장애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 유성 원장은 한인들에게 메디케어(Medicare), 메디케이드(Medicaid) 등에 대한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세미나 등을 달라스한국노인회 등, 노인 단체들을 통해 알리려고 노력했다. 


유성 원장이 한국홈케어를 설립했을 때만 해도 한인들 사이에서는 가정방문 간호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던 시기다. 저소득층 노인들이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를 통해 무상으로 가정방문 간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음에도, 유성 원장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사기라는 오해를 받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오해들은 풀리게 됐고, 유성 원장의 노력은 보람으로 되돌아왔다. 각종 노인 모임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했고, 노인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돈도 받고 의료혜택도 받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정방문 간호 서비스가 나의 마지막 사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힘을 얻어 이 사업을 이어갔습니다.”


한국홈케어를 정상궤도에 올려 놓은 후 유성 원장은 패키징 사업에 뛰어든다. 대형 물류를 운반할 때 포장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랩(wrap)을 공급하는 일이다. 유성 원장은 비즈니스를 최소 2개 이상 다양하게 하는 것이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준비라고 생각한다. 의료분야와 전혀 다른 계통에서 ‘제2의 비즈니스’를 찾던 중 남편과 상의한 끝에 최근 온라인 비즈니스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온라인으로 주문되는 모든 물품이 우편으로 배달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크고 작은 규모의 패키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사업에 비전이 있다고 판단한 유성 원장은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해 와우 패킹(Wow Packing)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지금은 달라스와 로스앤젤레스에 지사를 두고 있고 1,000여 곳에 달하는 거래처를 두고 있을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다졌다.


자신이 1인자였던 가정방문 간호 서비스 산업을 벗어나 전혀 생소한 패키징 산업에서 뭔가를 일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루 24시간 패키징 비즈니스에 대해 생각했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실천했다.


“잠정 고객이 이미 거래처와 거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에 뛰어들어야 했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노력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임하다 보니 코로나 펜데믹 상황 속에서도 매출이 증가하는 업체로 성장했습니다.”


유성 원장의 인생 모토는 ‘사랑 나눔’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정신(Spirit)을 갖고 있는 것이라는 유성 원장은 “동물이 할 수 없는 정신적 사랑으로, 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랑을 주변사람들과 나눴으면 좋겠다”며 “사랑과 노력이 있는 곳에 성공의 향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현재 한인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코로나 백신과 관련된 도움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유성 원장은 함께 와우 패킹 사업을 하고 있는 남편, 사업을 하는 아들, 그리고 공학석사인 딸이 어려울 때마다 자신을 지켜주고 힘이 되어주는 에너지원이라며 늘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고 한다.


유성 원장은 건강한 음식 섭취와 적당한 운동을 통해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고 작은 일에 감사하며 많은 웃음을 나누는 것이 에너지와 열정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미주 한인사회의 위상이 달라스를 중심으로 높아지는 것과 ‘건강 지킴이’로서 자신의 역할을 끝까지 하는 것, 그리고 한국홈케어를 통해 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것이 앞으로 남은 꿈이라고 말하는 유성 원장의 앞날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토니 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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