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달라스 | 어스틴 | 휴스턴 | 영상뉴스 |

고 석보욱 목사, 최초 한인교회 설립 … 역사의 산 증인

중앙일보 0 571

1966년 달라스 첫 한인교회 설립, 한인들 모일 수 있는 유일한 ‘만남의 장소’

d9ccd4d9928361de224b4701dda8bd2b_1612554765_19.jpg
지난 1월 1일 91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한 고 석보욱 목사는 달라스 한인 초기 이민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달라스 한인 인구가 10만을 넘고, 대형 한인 마트가 넘쳐나는 오늘날의 풍요로움을 누리기까지 고 한국 구멍가게 하나 없던 이민 황무지에서 석보욱 목사가 뿌린 이민 개척, 그리고 교회 개척의 씨앗이 큰 역할을 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미국 내 타 지역은 물론, 한국에서 달라스로 유입되는 인구가 폭증하고 있는 요즘, 달라스 한인사회의 뿌리를 되짚어보자는 의미에서 고 석 목사의 족적을 일부 짚어 본다. 내용은 달라스에 거주할 당시 한인 이민역사를 집대성한 신기해씨의 저서 ‘달라스 초기 한인 이민사’의 일부를 발췌해 구성했다. <편집자주> 



달라스 한인 이민 역사는 석보욱 목사를 빼 놓고는 도저히 써 내려 갈 수가 없다. 그 만큼 달라스 첫 한인 개신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석 목사는 한인 사회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는 1966년 8월 15일 달라스한인교회를 설립한다. 의사였던 안재호, 정철륭씨 등과 유학생, 국제결혼 가정 등 60여 명의 한인들이 화이트락 호수(White Rock Lake) 공원에서 열린 창립 예배에 참석했다.


이는 당시 달라스 일대에 거주하던 거의 대부분의 한인들이었다. 이 교회는 종교 단체로서 본연의 역할 회에, 한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일 수 있는 유일한 만남의 장소를 제공했다. 장로교, 침례교 등 교파를 초월할 뿐만 아니라, 비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예배 모임에 참석하곤 했다.


1968년 초교파적인 성격을 더 단단히 하기 위해 달라스한인연합교회로 개명했다.


석보욱 목사는 1963년 봄에 달라스에 왔다. 달라스신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석 목사는 이 학교에서 1965년 석사 학위를 받고, 인근 SMU 신학대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집도 SMU 근처인 그린빌 에비뉴(Greenville Ave.)와 비커러 블러바드(Vickery Blovd.)가 만나는 곳에 있는 한 아파트로 옮겼다.


그는 이 시기에 하나 둘 한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한인 식품점이 없던 당시 석 목사는 자전거를 타고 노스 핏츠휴 에비뉴(N. Fitzhugh Ave.)와 마넷 스트릿(Manett St.)에 있던 중국인 식품점인 정스 스토어(Jung’s Store)에 장 보러 다녔다. 이 식품점 주인은 자기 가게에 오는 한인들을 석 목사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렇게 만난 사람들이 강희구씨와 아내 윤현숙씨, 김래응, 김인곤, 동원모, 문병수, 손명걸, 안교선, 이강복, 이군호씨 등이었다.


대부분 유학생으로 미혼이었던 이들은 석 목사의 집을 제 집 드나들 듯했다. 그래도 석 목사는 귀찮아 하지 않고 자신의 집을 24시간 개방했다. 단, 담배나 술은 허용이 되지 않아서 술과 담배를 하는 사람들은 집 밖에서 해결해야만 석 목사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들이 모여 한인교회를 세웠다.


1970년 석 목사는 미국교회 담임목사가 돼 한인교회를 떠났다. 달라스시에서 차로 두시간 정도 떨어진 마운트 플레전트(Mt. Pleasant) 시에 있는 제일그리스도교회(First Christian Church)로 갔다. 백인이 대부분인 이 교회에서 6년여를 시무하는 동안 교인이 배가 넘게 성장했다.


석 목사는 1982년 12월 달라스연합교회 6대 담임목사로 돌아왔다. 교회 설립자로서의 사명감과 미국 교회에서 배운 노하우가 합쳐져 석 목사의 지도 하에 교회는 크게 성장했다. 80여명이던 교인은 1986년 300명을 넘어섰다. 2세들이 늘어가고 사모인 황수옥씨 등의 노력에 따라 주일학교도 확장돼 1986년에는 OTIS라는 회사로부터 인근 건물을 기증받아 교육관을 만들었다.


1990년 12월 60세를 넘긴 석 목사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목회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하지만 2002년 70세를 넘긴 고령에도 불구하고 텍사스로 다시 이주해 보만트(Beaumont) 시의 한 한인 침례교회에서 목회를 재개했다. 2004년 달라스 시 노스 웨이 교회(Northway Christian Church) 부목사를 2010년까지 맡다가 은퇴했다. 


석보욱 목사는 1929년 전북 이리시(현 익산시)에서 태어났다. 전주 신흥중고교를 다니던 석 목사는 해방 후 좌우익 대립이 심하던 때 학교내 학도호국단을 이끌며 우익 운동에 앞장섰다. 1950년에는 아버지의 권고로 당시 서울 남산에 있던 장신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곧 터진 한국전쟁 통에 미쳐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한 석 목사는 북한군의 포로가 된다.


신앙을 포기하면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하고,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중에 극적으로 탈출해 동굴에서 지내며 서울 수복 때까지 기다렸다. 이 때의 경험은 이후 석 목사의 미국 목회에 좋은 경력이 된다. 이후 신학교에 복학해 서울 충무로교회, 성동교회 등에서 목회 및 성가대 지휘를 하던 석 목사는 1955년 초등학교 교사였던 황수옥씨를 만나 결혼했다. 1960년 숭실대 대학원에 진학하고 영어 공부를 한 뒤 1962년 미국에 오게 된다.


발췌 = 달라스 초기 한인 이민사

사진제공 = 이태경

정리 = 토니 채 기자


0 Comments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