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목회칼럼] 우리집 냉장고가 비었어요

중앙일보 0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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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발현 이후, 우리 삶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마음대로 모임을 할 수 없고, 사람들 간의 거리는 멀어졌다. 외출이 줄어들면서 교통체증이 사라졌고,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없어 외식이 줄어들었다. 사람들의 이야기 주제가 대부분 코로나가 되었다. 기승전 코로나.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해도 언제나 코로나가 껴들었다.

집안에서의 변화도 크다.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못해 집에 머물렀고, 부모들도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들을 건사하느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삼시세끼를 집에서만 해결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고, 달랐던 부분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조율과정에서 불화가 심화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필자도 코로나 규제조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전에는 주로 교회에 머물지만, 오후시간에는 주로 집에 머무는 편이다. 오전에는 목회사역, 오후에는 가정사역이다. 가정 사역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요리다. 매일하지는 못해도, 맛깔스럽게 하지는 못해도,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안먹어도 배부르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100% 이해가 된다. 요리는 설교사역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많은 시간 말씀을 묵상하며 정성껏 준비한 영의 양식을 성도님들이 은혜로 받아주시면 이보다 가슴 벅찬 일이 없다.

얼마전, 저녁 식사준비를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기회가 있을 때 요리를 하는 편이다. 가득 채워져 있던 냉동고에 빈자리가 보였다. 냉장실도 뒷벽이 보일만큼 공간이 생겼다. ‘냉장고가 많이 비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에 비워야 할 것들이었는데, 나중에 사용하려고 넣어 둔 것이 쌓이고 쌓여 냉장고 깊숙이 쳐박혀 버렸다. 당시에는 나중을 위해 보관해 두었지만, 나중에 보니 이런 재료가 있음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규제조치가 풀렸다 하더라도 마트 방문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마트에서 장보는 횟수를 줄이고, 거의 대부분 집에서 해 먹다 보니 집에 있는 재료들이 알뜰하게(?) 소진되었다. 식사를 준비하며 ‘오늘은 이 재료로 무엇을 만들어야 하나?’ 주부들의 고민을 자주 하곤 한다. 마치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 내는 요리경연대회에 참석한 것처럼.
 

냉장고 안에 빈 공간들을 보면서 가득할 때는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생각한다. 내 생활 속에 불필요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버리지 못해 부여잡고 있는 것들이 의외로 많았다.

3년 전 교회를 이사할 때의 일이다. 큰 건물 대신 형편과 실정에 맞는 작은 교회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준비하며 garage sale을 서너 차례 했다. 버릴 것은 버리고 팔 것들은 팔았다. 30년 묵은 짐은 결코 적지 않았다. 마지막 날 이삿짐을 빼고 교회를 청소하면서 갖다 버린 쓰레기만 U-Haul 트럭으로 넉대 분량이 나왔다. 처리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이건 나중에 필요할 때가 있어’, ‘이건 내년에 또 써야지’ 하면서 나중을 위해 쟁여 놓은 물건들이었다. 10년 넘도록 사용도 하지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했고, 실제로 사용할 때가 되면 너무 오래되서 사용할 수 없거나 더 좋은 것이 나와서 새 것을 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garage나 storage에 넣어 둔 것들을 살펴보면, 나중을 위해 보관은 했지만, 실제로 사용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네 신앙생활 가운데도 분명 꼭 필요한 것이 아닌데 부여잡고 있는 것들이 있다. 모든 설교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 세상 것들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보면, 부자는 밭의 소출이 풍성해 지자 많은 곡식을 쌓아둘 곡간을 지으려했다. 하나님은 부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자기 자신을 위해 쌓아둔 것이 당장 목숨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일어났을 때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많이 가진 사람이나 적게 가진 사람이나, 권세를 가진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첨단 기술력으로 우주 여행을 꿈 꾸는 인간이 한낱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행동에 제약을 받고 온세계가 그대로 멈춰 서버렸다. 과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중을 위해 이것 저것 많은 것을 준비하지만, 내가 가진 것 중에 꼭 필요한 것은 얼마나 될까?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많은 것들을 하고 있지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신 말씀은 세상의 것들을 구하기 전에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다. 우리의 구하는 것, 곧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은 공중의 새들을 먹이시고 들의 꽃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세상 것들에 대한 무리한 욕심, 더 가지려는 탐욕을 버려야 한다. 미래를 준비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이 중요함을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기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세상적 지식과 명예, 학벌 등을 배설물처럼 여김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과연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내가 이전에 가지고 누리고 즐기고 따르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있는가? 아니면, 문제가 없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식을 자랑하다가도 문제만 생기면 창고에 쟁여두었던 ‘이 날을 위해 준비한 것’을 꺼내 드는가?

코로나 바이러스 규제조치로 교회의 현장예배가 중단되고 한 달 즈음 지났을 때, 우리 교회 미국인 장로님께서 교회를 찾아오셨다. 그동안 드리지 못했던 헌금을 매주 봉투에 담아두셨다가 한번에 가지고 오셨다. 헌금을 하시고 교회를 둘러 보신 후 하시는 말씀이, 팬데믹 이전으로는 절대(naver)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일상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이전과는 다른 일상이 되리라는 말씀이었다. 우리의 실제 생활이든, 영적 생활이든, 분명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우리 안에 묵은 것들을 버려야 한다. 냉장고가 비면 새로운 것들로 채워야 하듯, 죄는 물론이거니와 묵은 생각, 묵은 습관을 버리고 새롭게 갱신해야 한다. 변치 않는 것은 오직 말씀 뿐이다. 세상은 자의든 타의든 매일같이 변하고 있는데, 변하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품어야 할 교회는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20여년 전에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기업 임원들에게 “마누라와 자식 빼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모두 바꾸라”고 지시했었다.

교회 안에서도 똑같이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 말씀과 아내와 자식 빼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다 바꿔야 한다. 무조건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서 어긋난 것을 바로잡고, 시대에 뒤떨어진 고정관념은 버리고, 해묵은 감정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야 한다.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다시 하나님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만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 사회는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가 생겼다. 꽤 오랜 시간동안 사회적 거리가 유지될 듯 하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사회적 거리가 생겨 오히려 주님이 개입하실 공간이 생겼다. 사회적 거리는 유지하되 하나님과의 영적 거리(Spiritual distance)는 더 가까워 져야 한다. 묵은 것들을 버리고 빈 공간에 주님으로, 그리고 주님의 것으로,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채워야 한다. 변화된 사회와 더불어 변화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가 달라졌어요” 우리가 세상에서 들어야 할 소리가 아닐까?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필요하다. 옛 것은 버리고 새롭게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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