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결혼칼럼] 26세 여성의 처연한 뒷모습

중앙일보 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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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싱글 남성 집을 방문해 하루 머물렀던 적이 있다.

우버 택시를 타고 자택에 도착했는데, 집 앞에는 승용차 3대가 있었다. 1대는 대형 승용차, 1대는 파란색 BMW 컨버터블, 그리고 1대는 SUV 차량이었다.

남성은 5년 전 이혼했는데, 전 부인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미국에서 딸과 단 둘이 살고 있다. 남성은 재혼을 원한다. 8~9살 연하, 자신이 하는 부동산 에이전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여성이면 좋겠다고 했다.

저녁 식사 후 와인을 하면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딸이 와서 인사를 했다. 올해 26세인 딸은 대학 졸업 후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파란 컨버터블의 주인공이다. 스포티한 차를 모는 여성답게 딸은 늘씬한 스타일에 활력 넘치는 모습이었다. 


아빠와 딸의 대화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집 앞에 파란색 차 멋있던데요?”
“얘가 천장 없는 차를 사달라고 해서요.”
“아빠, 천장 없는 차가 뭐야? 컨버터블이지!!”
“그래.. 그런 차도 젊어서 타봐야지 싶어 사줬어요.”

남성과 하루를 같이 있다 보니 딸에게서 몇 번 전화가 걸려왔다. 농담도 하고, 안부를 묻는 짧고 가벼운 통화였다. 미소가 지어지는 부녀 사이였다. 단 둘 뿐인 가족, 그래서 서로를 더 챙기는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집과 회사를 오가며 사는 딸은 전화할 사람, 얘기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딸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좋은 경험을 많이 쌓는 게 좋아요.”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뭐든 좋지만, 담배는 가능하면 안하는 게 좋아요. 본인도, 미래의 남편도..”
“호기심에도 안돼요?”
“호기심으로 할 게 얼마나 많은데, 담배를 해요?”

참 순진하고, 어른 말에 잘 순응하는 여성이었다. 이런 보석 같은 여성이 외롭게 살고 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사회에서 한국계는 소수이고, 그래서 가족의 유대로 뭉치고, 버티면서 살아간다. 가족이 무너지면 다 외로워지는 것이다.

딱 하루를 지냈는데도 아버지와 딸이 굉장히 외롭다는 게 느껴졌다. 친구도 한정적이고, 그래서 아버지와 딸은 서로를 챙길 수밖에 없다. 그나마 아버지는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았고,사업을 통해 아는 사람들도 많아서 외로움이 덜하고, 외롭더라도 이겨낼 줄 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했고, 직장생활 1-2년 했을 뿐인 딸은 더 외롭다.

아버지를 중매하러 왔다가 딸의 중매를 생각하게 됐다. 미국의 한국 부모님들이 찾던 며느리감이 여기 있었다. 세상 때 안묻고, 착하고, 가정적인 여성 말이다.

출근길에 내게 작별인사를 하고 가는 딸의 처연한 뒷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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