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결혼칼럼] 성공한 아버지의 마지막 목표는 딸의 결혼

중앙일보 0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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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을 거쳐 텍사스로 향했다. 한명, 한명을 만날 때마다 책 한권의 스토리가 나온다. 이것이 인생이다. 특히 미국은 더 흥미진진하다.

텍사스주 달라스에 도착했다. 이곳에 거주하는 아버님 한분을 만났다. 원래는 달라스에 선우 글로벌 센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현지 분위기를 보러 왔는데, 온 김에 만나고 싶었던 분과 약속을 잡은 것이다.

이 분은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이민 1세대로 수많은 회원 부모님 중에서도 인상 깊었고, 선배 세대로서 배울 점도 많은 분이었다.

얼마 전 매니저 한명을 눈물 날 정도로 혼낸 적이 있다. 이 분에게는 딸이 둘 있는데, 두명 다 최고의 명문대를 졸업했고, 전문직 중에서도 하이 클래스의 직장에 다니며 연봉 20만불 이상을 받는 훌륭한 여성들이다. 


매니저에게 이 분의 딸 한명의 소개를 맡긴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확인해보니 18명의 남성을 추천했는데, 실제로는 1명도 안 만났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상황은 충분히 이해된다. 아버지도 워낙 높은 성취를 이룬 분이고, 딸도 그렇다 보니 만남이 쉽지 않은 경우다.

아버지는 나를 대접하겠다고 달라스에서 가장 좋은 식당을 예약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두 사람 식사비용이 300불이나 됐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점심을 굶을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버지는 젊은 날 무역회사 해외 주재원이었는데, 선배의 갑질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당시는 회사에서 여권을 빼앗아 감춰놓던 때였다. 그런 시절에 미국에 와서 천신만고 끝에 성공했다.

신기했던 것은 지인과 통화를 하는데, 이 분을 알고 있었다. 전혀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서 이 아버지의 성실함을 알게 됐다. 내가 발이 넓긴 넓은가 보다.

동부에서 성공한 아버지는 달라스에 정착했다. 지금은 달라스 부촌에 노후를 보낼 수백만달러 저택을 짓고 있는 중이다.

자녀 얘기가 나왔다. 먼저 소개가 잘 안된 것을 사과했고, 꼭 상대를 찾아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버지는 딸 결혼 잘 시키는 것이 인생의 마지막 목표라고 했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도 알고 보면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부모이다. 나도 부모라서 이런 마음을 잘 안다.

부모님은 결혼을 서두르는데, 딸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고 했다. 나도 맞장구를 쳤다.

“부모가 무슨 말만 하면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하죠?”
“결혼 얘기 하면 듣고 있기는 한데, 따르지는 않아요. 부모 속 한번 안 썩였는데,
결혼은 참 어렵네요.”
“현명한 친구니까 아마 잘해낼 겁니다.”

아버지는 어떤 사위를 바라는지 물어봤다.

“딸을 사랑해주는 남자면 좋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바라는 사윗감이 있잖습니까? 어떤 직업이라던가...”
“직업보다는 사람이 중요하죠..”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지만, 큰 성취를 이룬 딸에게 아무나 소개할 수 없는 고민이 있다.

그날따라 맥주맛도 좋았다. 대화가 무르익었다.

“결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처음 얼마간은 좋다가, 안좋다가, 나중에 다시 좋아지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죠.”

결혼의 기복을 얘기하는 걸 보니 이분의 부부생활에 굴곡이 있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다음 모임이 있어서 일어나야 했다. 아버지는 좀 더 있고 싶어했지만, 몇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 더 미룰 수가 없었다.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해서 가는데, 계속 빙빙 도는 것이었다. 결국 아버지가 상대방과 통화한 끝에 찾아갔는데, 주소가 잘못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주소 틀렸다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돌아갔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있고, 성공했어도 겸손하고, 삶에 최선을 다하는 분, 이런 분의 딸에게 꼭 좋은 상대를 소개하고 싶다.

함께 차를 타고 오면서도 끝내 물어보지 못한 질문이 있다.

“당신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셨나요?”

아버지가 이 글을 읽을 확률이 높은데, 이 대목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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