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이민자의 자녀양육] 코로나바이러스와 감사의 조건

중앙일보 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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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불안하고 불편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코로나19 이전의 삶에 감사했었어야 했던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마스크를 챙기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 감사했었어야 했다. 집을 나서다가, 사무실을 나서다가 “아차, 마크스” 하면서 돌아선 것이 몇 번인지 헤아릴 수도 없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 감사했었어야 했다. 마스크를 쓰고 계단을 오르면 쉽게 숨이 찬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사람들의 얼굴표정 읽기가 힘들다. 학생들의 활짝 웃는 모습이 보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마스크 때문에 입을 오무리고 말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어떤 때는 입술이 움직이는 모습을 못 보니 발음을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힘들기도 하다. 마스크를 쓰고 벗다가 마스크귀걸이가 안경다리에 걸려 안경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한다.

자유롭게 악수하고 포옹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했었어야 했다. 한동안은 주먹박치기가 유행하더니 그것이 팔꿈치인사로 바껴서 어색했는데, 요즘은 물리적 거리두기 때문에 그나마도 못하니 아쉽다. 


아무런 절차 없이 등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했어야 했다. 매일 아침마다 학교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체온을 확인하고 건강체크 설문지를 작성하고 출입허가을 받는 일이 번거롭다.

입구와 출구,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 좌측통행과 우측통행에 신경쓰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것에 감사했어야 했다. 전에도 방향표시가 있었지만 무시하고 다녔다. 그러나 요새는 건물에 들어설 때부터 정해진 표시를 의식하게 되고 어쩌다 실수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면 눈치가 보인다.

가까이에서 마주 보며 또는 나란히 앉아 대화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했었어야 했다. 요사이는 멀찌기 떨어져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니 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맞는 것이 부담스럽다. 교수를 찾아와야 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부담스러울 것이다.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대화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했어야 했다. 지금은 강의실 앞쪽에 투명 아크릴 판을 세워놓고 그 뒤에 서서 마스크를 벗고 강의한다. 습관적으로 학생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두가 한 강의실에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했었어야 했다.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의 일환으로 학생들의 반은 대면 수업에 참여하고, 반은 온라인으로 비대면 수업을 한다. 다음 시간에는 대면 수업을 하던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수업하고, 비대면으로 수업하던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수업을 한다. 대면과 비대면 학생들이 동시에 수업을 하다보니 토론이 원활하지 않다.

강당에 빈 틈 없이 앉아 강의를 듣고 노래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했었어야 했다. 1,500명의 학생들이 화음을 이루어 부르는 합창소리로 인해 가슴이 울리던 느낌이 그립다.

왁자지껄한 식당에서 수다를 떨며 식사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했어야 했다. 요즘은 식당에 가는 횟수가 확실히 줄었다. 어쩌다 식구들이나 동료들과 식당에 가려면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 시간을 피해서 가게 된다. 비말(입에서 나오는 작은 물방울)이 튈까봐 말하는 것도 조심하게 된다.

눈치 보지 않고 기침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했었어야 했다. 간혹 헛기침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며 바이러스 환자가 아닌지 의심부터 생긴다. 기침을 하면 바이러스 환자로 오해받을 것 같아서 감기 걸릴까봐 또 사레들릴까봐 두렵다.

마음대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했어야 했다. 어느 나라를 가든 며칠씩 격리를 당하는 것 때문에 한국과 인도를 방문하기로 했던 계획을 취소했다.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국내여행을 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조심스럽니다.

돌이켜 보니 감사했었어야 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 감사하지 못했던 것들이 참 많다.

이렇다할 학벌도 기술도 외모도 없는 한 청년이 있었다. 취직에 번번히 실패하자 그는 아무것 없는 자신이 한심스러워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 청년이 기분전환을 위해 산책을 나갔다. 동네공원에서 나무그늘에 앉아 있는 노인들을 만나 인사를 했다. 그중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말했다. “우리도 한 때는 자네같은 젊은이였지. 젊은 자네가 부럽네.” 그러자 곁에 있던 할머니가 거들었다. “우린 이제 살 날이 얼마 안남았는데, 젊은이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청년은 내친 걸음에 병원에서 불치병으로 인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친척을 찾아갔다. 병상의 친척이 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넌 건강해서 좋겠다. 열심히 살아라.”

노인들과 친척에게 들은 말을 생각하며 집에 도착해보니 군대에 가 있는 친구의 편지가 와 있었다. 그 편지에는 엄격한 규율에 따라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가 부럽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청년은 한나절 동안의 경험을 돌이켜보며 자기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자신에게는 젊음, 건강, 자유 등등,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감사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1891년 어거스트 스톰(August Ludvig Storm)이 작사한 노래의 한 절이 생각난다.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이 노래는 원래 스웨덴어로 쓰여졌는데 1931년 칼 백스롬(Carl E. Backstrom)이 영어로 번역했고, 그것을 문정선이 1980년대에 한국어로 번역했다. 세상에 감사거리가 셀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이 생각나게 하는 노랫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의 조건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코로나바이러스 덕분에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겠다고 다시 한번 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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